이 도시는 아무리 다녀도 질리지가 않는다.
미로같은 골목을 목적 없이 쏘다닌다. 작은 운하와 곤돌라들, 예쁜 악세서리를 파는 유리세공 상점들, 조그만 광장, 그리고 성당을 만난다. 또 뜬금없이 정말 자주 마주치게 되는 현대미술 갤러리들까지.. 방향 감각없이 아무데나 돌아다녀도 하루종일 지루할 틈이 없다.
바다 위에 반짝이는 빛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경쾌하다.
그냥 골목을 찍고 있었다. 갑자기 두 아저씨가 등장한다.
조심하지 그러셨어요....순간 웃음이 터져서 죄송했습니다....ㅎㅎㅎ
알고보니 베네치아 출신이었던 비발디의 사계 연주회를 여기서 들었는데, 왜 그의 음악이 그토록 밝고 경쾌한지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공연을 기다리며 옆자리에 혼자 온 여행객이 있길래 자연스레 말을 건냈다. 뉴욕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음 날 같이 베네치아를 관광하기로 했다.
다음 날이 되었다. 그 여성은 혼자 나타나지 않았다. 호스텔에 같이 묶고 있는 스웨덴 커플과 함께 왔다. 머리가 지끈했다. 결코 로맨스를 꿈꿨던 건 아니다. 1:1로는 어떻게든 통하는 영어 대화가 3:1이 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내가 소외되는 분위기가 됐다. 영어 못하는 나를 위한 그들의 배려도 한 두번이 넘자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그들과 꾸역꾸역 있었으나 반나절이 넘자 갑자기 두통이 몰려왔다.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 영어고자의 삶이란..
영어 감옥에서 탈출해 다시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우연히 발견한 성당에 들어갔다.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성당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떤 클래식 밴드가 리허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앉아 연주를 엿들었다. 파이프오르간, 플룻, 바이올린, 첼로, 보컬로 구성된 밴드였다. 넬라판타지부터 캐논, 사랑의 꿈, 등의 곡을 연주했다.
소리의 울림이 커다란 천장의 공간까지 올라갔다가 울려퍼지는 성당은 마이크나 스피커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자체로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훌륭한 공연장이었으며 여행 중 처음으로 지금 이 순간, 무진장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내 숙소에서 같이 묵고 있던 브라질에서 온 누나, 이란에서 온 형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셋 다 영어를 못해서인지 대화 중 누구도 소외되질 않았닼ㅋㅋㅋㅋ 우리는 누구 하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에 서로 안도했다. 영혼까지 통하는 느낌이었다.. 술까지 거하게 먹고 비틀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나도 곤돌라를 탔다.
관광객을 태우고 운하 구석구석을 다니는 곤돌라. 곤돌리언이 되려면 곤돌라 학교에 4년동안 공부를 해야 하며 12개의 시험을 패스해야 가능하다고 하다. 경쾌한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곤돌리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곳에서도 여러 미술품들을 감상했는데, 무엇보다 베네치아에서 베네치아화파 그림을 보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 몇백년 전 그림 속 풍경과 지금 현재 베네치아는 사람이 입고 있는 옷 패션 말고는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도시는 놀라우리만큼 잘 보존되어 있다.
다만 그림들을 보면 옛 왕국의 어마어마한 영광과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옛날에도 엄청났던 베네치아.
베네치아에 와서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았지만 솔직히 비엔날레보다 그냥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골목 골목의 모든 풍경들, 바다 위에 떠 있는 형형색색의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이 훨씬 더 미술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베네치아를 찾는 이들이여, 미술관에서 시간낭비 하지 말고 그냥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늦은 저녁, 군데군데 가로등이 비추는 인적이 드문 좁은 운하를 따라 걷노라면 그 어느 밤 산책 코스가 여기에 비견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운치가 넘친다. 이어폰은 꽂고 홀로 인적이 드문 운하를 따라 밤 산책을 나서곤 했는데, 베네치아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중에 하나였다. 너무나도 낭만적이다.
창문 밖으로 방울을 불고 있는 베네치아 아이들. 야밤에 무척 즐거워 보인다.
베네치아에서는 정말이지 모든 것들을 다 찬양 또 찬양하고 싶어진다. 이 도시에 대한 감동의 글은 나보다 200년 먼저 이 곳을 여행한 괴테 형이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귀중한 것 뿐이다. 그것은 결합된 인간의 힘이 만들어낸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작품이며, 한 사람의 군주만이 아니라 한 민족이 함께 건설한 훌륭한 기념비인 것이다.
그래서 설혹 그들의 갯벌이 점차 매워져 사악한 기운이 늪 위를 감돌고 그들의 상업정신이 위축되거나 그들의 권세가 땅에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이 공화국의 위대한 기초와 본질은 한순간이라도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의 외경심을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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