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 왔다.
밀라노는 다른 이탈리아의 도시와는 달리 굉장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갔을 때는 바캉스 기간이라 그런지 길에 사람도 별로 없고.. 마치 시간이 정지된 도시 같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도시 사이를 가르며 나는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으로 향했다.
어두침침하고 조용한 미술관 내부를 지친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오옷!! 하며 머리털을 쭈뼛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이 그림,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르네상스 3대 천재 중에 한 명인 라파엘로의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바티칸에 있다. 내가 본 것은 '그' 아테네 학당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아테네 학당의 '스케치 버젼'이었다.
훗날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유화 완성품을 보기도 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에 있는 이 연필스케치 버젼에서 훨씬 라파엘로의 천재 포스가 넘쳐났다.(그렇기도 하고 바티칸에서는 미켈란젤로랑 졸라 비교되기도 하니까..)
적지 않은 사례에서 완성작보다 드로잉 단계의 작품이 훨씬 더 감동적이곤 하다. 완성작이 말 그대로 꿈쩍할수 없는 완벽한 세계라면, 드로잉은 거친 선으로 어딘가를 향해 지속하고 있는 상태를 붙잡아놓았기 때문이다. 밀라노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에게 이 미술관 꼭 추천해드리고 싶다.
이런 그림도 보았다. 오..빨려든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본다.
물감 텍스쳐가 장난 아니다. 도대체 몇 겹을 쳐바른 거시여... 간지나게 발랐네.. 작가 이름을 슬쩍 보니 모르는 이름이다. 사실 내가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같은 슈퍼월드스타만 알 뿐이지 국가대표 수준은 지식이 딸려서 잘 모른다. 캡션을 보니 Giovanni Segantini.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모든 미술품에 감사를!
이 그림도 누구나 알 것이다. 아마 <모나리자>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이 그림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에 가서 직접 보았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이 그림이 최초에 의도한 장소에 그대로 걸려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 공간- 식당- 에서 그 그림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했을 수도사들까지도 같이 상상해 볼수 있었다. 다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는 아우라와 함께 예약제로만 진행되는 관람, 제한된 관람객의 인원, 단 15분이라는 제한된 관람시간은 최후의 만찬을 더욱 더 신비스럽고 귀중한 것으로 만드는 요인이었다.
다만 만약 이런 모든 부차적 요소, 명성, 작가, 스토리, 캡션이 제거된 상태로 수많은 르네상스 그림들 사이에 그것이 걸려 있다면 저 그림의 가치를 과연 몇명이나 제대로 알아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을 직접 본 것은 미술을 업으로 하는 나에게 분명 기념비적인 가치가 있었지만 사실 그것을 관람한 후 밖으로 나와서 새삼스럽게 다시 보았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외관이 더욱 더 멋지고 예쁘고 아름다웠다. 역사의 띵작이라고 무조건 내 감동이 보증수표처럼 발행되는 건 아니니까.
스포르체스코 성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미켈란젤로가 죽기 3일전까지 작업을 했다는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그것이 미완성이었던 까닭인지 마치 로댕을 연상케 했다. 이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혈기왕성할때 제작했던 바티칸의 매끈한 피에타와 비교가 된다.
바티칸 피에타를 보고는 '와.. 잘 만들었네!'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반면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와....와....와...와...!!!!' 이렇게 된다. 기술적 완성도를 뛰어넘은 작가는 재료를 다시 자연으로 회귀시키려는 욕망이 있나 보다.
'돌'과 '인간'의 딱 중간사이에 영원히 존재하게 된 슬픈 표정의 마리아와 예수의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설명할수 없는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밀라노에서의 3일동안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정말 토할 정도로 많은 그림을 보았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도 좋고 라파엘로도 좋고 이름모를 화가들 그림도 좋긴 하지만.. 너무 뺵뺵하고 크고 유화물감 가득 차 있는 작품들만 보다보니... 갑자기 산수화 한 점이 간절했다. 물 한 잔 마시지 못하고 10분 스테이크를 먹은 느낌이랄까. 인왕제색도 같은 , 시원할 물 같은 그림이 여기 있을 턱이 없겠지.
세계최대규모의 고딕 양식의 성당, 밀라노의 두오모를 봤다. 한마디로 쩔었다. 르네상스인들이 고트족을 빗대어 중세시대의 건축물을 미개한 양식으로, 즉 고딕(Gothic)으로 명명했다는데 그들을 찾아가 멱살을 잡으며 따지고 싶을 정도로 밀라노 두오모는 위대하고 훌륭했다.
그들이 이런 우주적이고 완벽한 성당을 보고도 그렇게 미개한 수준의 시선으로 보았다는게 도저히 납득 불가다. 모과이의 우주적인 음악을 들으며 웅장한 성당 내부를 거닐었는데, 정말 이런 종류의 포스트락 그룹이 여기서 콘서트를 하면 진짜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에 와서 수많은 성당을 들어가 보았지만 밀라노의 두오모처럼 큰 성당이든, 가이드북에 나와있지도 않는 길가의 작은 성당이든 간에 들어가보면 성당의 건축물은 모두 비교할 수 없는 저마다 고유의 크고 작은 아주 다양한 우주를 각기 품고 있다.
성당과 무지개 :)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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