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오로지 노란 도시, 액상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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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느즈막하게 일어나 전날 빨아둔 옷을 개어놓고 간단히 씻은 다음, 다시 짐을 싼다. 엑상프로방스 만큼은 호텔에서 혼자! 지내보자 라며 호스텔에 두배 이상에 달하는 비싼 돈을 주고 예약을 했던 곳이다. 1인실 너무 좋다. 이틀동안 정말 푹 쉬었다. 이제 남은 기간동안 이런 호사는 누릴 수 없으리라.

이제 다시 유럽여행을 간다고 하면 8인실 16인실같은 호스텔에서는 못 지낼 것 같다. 모두가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성격의 공간이 어떤 이에게는 국제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겠지만, 나는 불특정 다수의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장기간 있는 것이 이제는 불편하다.

마음 맞는 사람을 우연찮게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이다. 그런 대화는 돈 주고도 살 수 없으리라. 하지만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과의 만남은 극히 드문 사건이다. 나머지 8할의 만남은, 내 체력을 갉아먹는다. 나는 그냥 혼자 있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내면에 집중한다. 글쓰는 행위는 내 생각을 그저 받아쓰기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쓰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내 자신과의 대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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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느덧 혼자가 익숙하다. 벌써 유럽여행을 한지 한달이 되었고, 한국을 떠난지 4개월째다.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첫 질문은 외롭지 않냐 혹은 심심하지 않냐라고 자주 묻곤 하는데 물론 외롭고 심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외로움과 심심함은 이렇게 역에서 기차를 1시간가량 기다리는 상황에서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글을 쓰게 만든다. 또 아무 생각도 않은 채로 한 없이 멍때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기도 한다. 물론 생각하는 것도, 글쓰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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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서서 식사를 할 곳을 찾아 돌아다닌다. 적당한 곳을 찾아 헤매느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장장 한 시간을 걸어다녀버렸다. 여길 봐도 노랗고, 저길 봐도 노란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긴 공복과 지친 체력은 풍경을 감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결국 들어가 배를 채운 곳은 패스트푸드점. 후식으로 맛있는 밀크쉐이크를 먹으며 다시 길가에 나오니 갑자기 눈 앞의 풍경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뭐 그런 것이다. 같은 그림이라도 자연광에서 볼 때와 인공 조명으로 볼 때가 완전히 다르듯이, 여행지에서도 같은 장소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의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하물며 햇빛이 쨍쨍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혼자 걷거나 누군가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때, 음악을 듣거나 혹은 도시의 소리를 들으며 걸을 때, 취했거나 그렇지 않을 때... 또 똥이 마렵거나 그렇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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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우니 앞이 보인다. 시내 곳곳에는 시장이 열려있다. 큰 길에서는 잡동사니 상품이나 옷, 악세사리를 파는 대형 시장이 주욱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왼쪽 골목으로 올라가니 조그만 광장에 과일시장이 열려있으며, 그 다음 블록에는 꽃 시장이 열려있다.

시장과 시장, 골목이 끝나는 틈새 사이에는 노래를 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세 명의 여자들, 분수대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와 아기를 달래며 남편의 기타반주에 노래를 하는 아줌마, 각종 기묘한 악기들을 땅바닥에 펼쳐 놓고 하나씩 연주하는 중년의 아저씨가 보인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빈 곳과 틈을 적당히 채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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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그맣고 노란 도시는 그 색깔만큼나 정말 활기가 넘쳐흐른다. 이 곳은 초대형 할인마트 건물 몇 군데와 백화점 건물 몇 군데로 돌아가는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정말 멋있는 세계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나온 부부 가수 앞에 앉아 한참을 감상하다가 결국 그 아줌마의 매혹적인 목소리에 반해 10유로를 주고 시디를 사고야 말았다. (그런데.. 왜 현장에서 감동받아 충동 구매했던 CD들은 하나같이 집에 돌아와 플레이어로 들어보면... 그때 그 느낌이 안 날까. 하긴. 귀로만 들었던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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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도시, 세잔의 도시, 액상프로방스를 이제 떠날 시간이 왔다. 유럽의 하이라이트, 이탈리아로 떠나는 기차 역에서 주절주절 메모를 하고 있다. 맞은편 벤치에 각자의 책을 펴들고 독서를 하는 커플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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