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살아있는 유체 도시





IMG_5053 복사.jpg



꽃의 도시
천재들의 도시
르네상스의 발현지

여기는 피렌체다.






mug_obj_139454032200827172.jpg


아침에 숙소를 나서면 좁은 길 끝에 마치 거인처럼 두오모의 쿠폴라(돔을 일컫는 건축용어)가 난데없이 우뚝 솟아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수록 양쪽의 건물 사이로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대한 주황빛 쿠폴라를 보고 걸을 때면 가슴이 설레고 두근두근거린다.






IMG_4965 복사.jpg


mug_obj_139454059594538621.jpg


태양이 없고 달이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두오모의 쿠폴라가 없는 피렌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강력한 존재감을 도시 가운데에서 내뿜고 있다.






mug_obj_139454047522622828.jpg


이것은 마치 거대한 도시라는 시계를 작동하게 만드는 건전지같은 존재라서, 혹여라도 쿠폴라가 이 도시에서 사라진다면 모든 피렌체 사람들은 그 상태로 일순간 정지해버리고 갑자기 병이 들며 결국은 다 함께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mug_obj_139454074366493699.jpg


일요일 아침 피렌체에서는 거의 광장마다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상인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들도 과일,꽃,책,그림,옷,골동품,악세사리,공예품, 눈길을 끄는 온갖 신기한 물건 등 가지각색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야외에서 열리는 시장의 활발한 모습들은 여전히 피렌체가 과거의 영광만 회상하는 도시가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사람들이 활력있게 살아가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말해준다.






mug_obj_139454080474229375.jpg


도시의 가장 큰 생명력을 주는 것은 역시 거리의 문화다. 광장문화의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는 유럽이기도 하지만 정말 거리, 골목, 광장마다 사람들에 의해 정말 다양한 색채가 깃들어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대형할인마트, 대형백화점, 각종 유명 체인점들이 아직 여기엔 전무할 정도로 삶의 공간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우리에게 편리성을 제공해주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대도시의 포탈화된 라이프스타일의 단점을 뭘까. 거리를 단지 이동 수단으로 퇴색시킨다. 그래서 도시의 생명력을 점점 앗아간다. 반면에 여기 피렌체는 정말 살아있는 유체도시다.






mug_obj_139454101407089324.jpg



한시간 반 동안이나 줄을 서서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겨우 입장했다. 티켓을 끊고 두번째 방을 들어가니 저 끝에 거대한 다비드 상이 보인다.

사실 이게 원본이기도 하고 설치된 공간과 조명이 워낙 훌륭해서 더욱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더할나위 없는 인간의 몸에 대한 완벽한 아름다움을 조각으로 재현해놓았다. 다른 행성에 사는 외계인에게 지구의 예술품을 딱 하나 보내서 소개할 수 있다면 난 다비드상을 택하겠다.

정말이지 이럴때면 어릴때부터 사진이나 컴퓨터에 의해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지속적으로 스포일러 당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물론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도 경이롭지만 바로 여기서 다비드상을 생전 처음으로 보았다면 정말 어떤 기분이었을까?






mug_obj_139454112236741691.jpg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따로 있는데, 다비드상보다는 그 앞에 놓여진 6개의 미완성 조각이다.

단지 돌에 갇혀진 사람의 형상을 꺼낼 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말 처럼, 육중한 대리석에서 사람이 기지개를 펴듯 빠져나오고 있다. 만약 창조론이 옳다면 신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mug_obj_139454117933629784.jpg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미완성'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 다비드상처럼 인간의 근육과 피부를 완전무결한 환영으로 재현할 줄 아는 그가 만든 이 조각상들은 결코 그런 비슷한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지 않아 보일만큼, 미켈란젤로의 고의성이 엿보인다.

그는 완성했기 때문에 여기서 작업을 중단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 그가 발견한 이 새로운 미학과 현대성으로 하여금 그는 여타 다른 동시대의 조각가들과 확연히 '한번 더' 구분되는 것이다.






mug_obj_139454121138336586.jpg



밀라노에서 보았던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 돌과 인간 사이에 영원히 갇혀버린 슬픔이 느껴졌다면, 이 노예상들에게서는 무거운 돌을 박차고 나오고 있는 모습에서 마치 알이 부화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mug_obj_139454129955579521.jpg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여행 중 단 한번도 꺼낸 적 없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림을 그린지 너무 오래되어 잘 될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이것만은 꼭 그리고 싶다.






mug_obj_139454129986757131.jpg



손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경직된 선들이 종이 위를 흐른다. 돌에서 사람이 생성되고 있는 조각의 모습처럼, 그림도 역시 그런 느낌으로 나와주어야 한다. 20분 쯤 흘렀을까. 눈과 손의 감각이 점점 맞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슬며시 펜을 위쪽으로 올려 잡아 그리니 좀 더 자유로운 선이 흐르기 시작한다. 한시간 남짓 지나, 펜을 놓았다.






IMG_5065 복사.jpg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 도시가 너무 좋다.




@thelump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4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