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1
스팀잇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재미와 함께 부담도 느끼고 있는 시기다. 1일 1포가 점점 버거워진다. 나 말고도 많은 스티미언들이 호소하는 증상? 이다. 대략 스팀잇 4개월차가 되면 모두가 느끼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이제 새로운 스티미언을 찾기도 귀찮고 그것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어서 그냥 기존에 소통하는 사람들의 글을 자주 읽게 된다. 내 피드는 4개월동안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고 거르고 골랐던, 내 큐레이팅의 결과이기도 해서 이제 읽을만한 글이 많다. 하지만 '써야 할' 하루치의 한정된 자원이 매일 생성되는 보팅 시스템은 창작자를 들뜨게도 만들지만 분명히 그 반대로 불안과 부담도 떠안게 한다.


2
영화제에서 만나 인연이 되었던 한 감독을 만나 술을 마셨다. 자신이 별자리 보는 것을 공부했다며 내 별자리 운세를 봐줬다. 난 현재 '지옥의 방' 에 있다고 한다 ㅋㅋㅋㅋ 그리고 내후년쯤 지옥의 방을 탈출하고, 인내의 시간을 2~3년쯤 보내면, 5년 후에는 인생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아 듣고 있는데 자꾸 스팀의 차트가 떠올랐다. 아 그러니까 차트가 그렇게 된다 이거지?.. 이정도면 심한 중독인가..


3
스팀잇을 보고 있으면 하락장이 올 때마다 사제가 등장하고 주목받는 것 같다. 사제는 항상 '빛을 볼거야!' 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런데 절박한 사람들은 항상 그 같은 말을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듣고싶어한다. 나도 그 신도 중에 한 명이 된 것 같다. 내일도 제발 그 말을 듣게 해주세요..


4
나태한 하루를 보낼 때마다 마음만 조급해진다. 강제로 출퇴근하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나와 같은 창작자 혹은 프리랜서들은 하루를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독하게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망해버릴 삶의 방식이다. 그렇다고 망하면 또 어떤가 - , 그냥 느리게 걷고 가끔 하늘도 보자 - 와 같은 쿨한 마음도 없기에 매분 매초가 조급할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조급한 마음이 날 지배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더 잘 보내지 않았어야 했나 라는.. 시간을 효율로 따지는 성과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대로 잘 안 된다.


5
그래서 플래너를 샀다. 프랭클린 플래너. 비싸더라. 저번 주에 만난 친구가 11년째 이걸 쓰고 있다고 해서 당장 샀다. 그래서 5일째 쓰고 있다. 스케줄을 정리하고 체크하는 것은 핸드폰 앱에서 다 되는 기능 아닌가? 라고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이거 정말 다르다. 두꺼운 가죽으로 근사하게 포장된 플래너 표지를 아침마다 열어서 소중한 내 하루 계획을 직접 기입하는 행위 자체가 어떤 의미를 발생시킨다. 매체를 기능으로만 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빈 칸에는 짤막한 일기를 몇번 써 봤다. 그런데 이거 해방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될 유치찬란하고 오글거리는 짤막한 글쓰기가 이렇게 좋은 것일 줄이야. 여기가 대나무숲이네. 당분간, 아니 오래오래 플래너를 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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