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의 조용한 신전,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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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조용한 신전

환  기  미  술  관







약속이 있어 부암동에 간 김에 환기미술관을 들렀다. 별 기대 안했는데 대단히 인상깊게 관람했다. 뉴욕 시절의 김환기 그림은 마크 로스코에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다. 로스코가 빨려들어갈듯한 붉은색과 검은색의 장송곡으로 사람들을 홀리게 만든다면, 김환기는 은은하면서 요동치는 파란색을 통해 무한한 우주를 체험하게 해 준다. 그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미술사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했을지 불현듯 궁금하다.


'추상화'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추상화를 그린다는 것, '순수한 조형'을 추구한다는 것, 아무런 외부세계를 지칭하지 않으면서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되는 그림에 대해 생각해본다.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 일단은 허망함이 떠오른다. 그림의 '내용없음'은 얼마나 허탈한 것인가? 순수한 형태와 색채를 지향하는 태도는 얼마나 뜬구름잡는 것인가? '무제'라는 캡션이 얼마나 무책임해보이는가? 그러니까 저 그림 속에 있는 동그라미와 네모와 맘대로 그은 선들이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뭐 어쩌란 말인가? 하물며 일생을 바쳐 심각하게 그림을 그리는 저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자하니 이 얼마나 허망하며 허탈한가? 저게 뭐라고 도대체? 이렇게 진지하게?


한편으론 추상화만이 진정 불멸과 영원을 꿈꾸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기미술관 3층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그림들 앞에 서 있노라면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과정이 압축되어 있는것만 같다. 인간의 사소한 감정들은 모두 사치라고 느껴진다. 거대하게 흐르는 우주의 시간에 비한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해 있는 사회적 문제들은 시시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계속 봐도 또 보고 싶다. 영원히 질리지 않을 것만 같다. 무인도에 갇혀 죽을 때까지 단 하나의 그림만 소유할 수 있다면 나는 김환기나 로스코의 그림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숭고를 지향하는 추상화를 보는 내 느낌은 그림 자체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숭고-추상화가 가지는 강력한 장점 중 절반은 그림이 전시되는 갤러리, 즉 화이트 큐브에서 기인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화이트 큐브라는 제의적이고 중성적인 공간이 없다면 추상화도 존재할 수 없다. 높은 천장과 사방이 하얀 벽면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은 플랫하고 거대한 추상화(color field painting)인 것이다. 숭고라는 감정도 이러한 조건 속에서만 가능하다. 김환기 전용 미술관은 이러한 점을 잘 꿰뚫고 있다. 추상화를 전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건축적 형태를 띄고 있다. 관객은 마치 성당이나 신전에 있는 듯한 신성한 느낌을 체험한다. 산 속의 조용한 신전.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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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미술관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 환기미술관)









타이틀 디자인 @kyu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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