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고 네가 그림 그리고
07. 한 여름밤의 꿈
아프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치열하게 아프면서 연애하고 싶지 않았다. 연애가 아니어도 내가 사는 세상은 충분히 치열했고 충분히 아팠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시작부터 조심했는 지도 모르겠다. 마치 헤어졌다 다시 사귀는 사람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먼저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던 그가, 거짓말처럼 떠나버렸다. 마음이 떠난 그는 그래도 나 같은 좋은 여자와 인연은 아예 끊고 싶지는 않다며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했다.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모르겠다고... 단지 나는 오빠와 헤어지기 싫다고 말이다. 그렇게 울었다. 대화를 하다가도 울음이 멈추지 않아 중단되었다. 다시 시작된 대화에서 그는 진심으로 인연을 아예 끊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내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말이 심히 충격적이었다. 오랜 부부생활을 함께 해온 권태기의 남편에게서 듣는 것처럼 충격이었다.
그가 먼저 내게 다가왔기 때문에 내가 너무 그를 편하게 대했냐고 묻는다면, 만난 시간이 워낙 짧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지독하게 그를 배려했다는 사실밖에 없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렇게 끝냈다. 나는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는 거 못하겠다고 얘기하며 끝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마음이 끝내 지지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조금은 멍하니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왜 아픈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떠나서 아픈 건지, 아니면 연애 자체가 끝나서 아픈 건지, 내가 꿈꿔왔던 그와의 미래가 무너져서 아픈 건지, 아님 이미 지인들에게 받은 축하 메시지가 무색하게 너무 빨리 끝나버려 창피한 건지...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느 것 하나라고 콕 집어서 얘기하기는 힘들었다.
왜 그렇게 빨리 그 사람에게 빠져버렸는 지도 의문이었다. 심심해서 봤던 사주에서 가을에 남자를 만나 나이 서른에는 결혼을 한다는 그 말이 나를 흔든 것일 지도 모른다. 가을보다 조금 일찍 찾아온 그가 운명이라고 믿어버린 것일 지도 모른다. 내 시크릿 노트에 적어 놓았던 대로 그가 내가 꿈꾸던 사람이어서 그랬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운명이 아니라고 하였을 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와 헤어지고 일주일을 아팠다. 일주일만 아프자고 생각했다. 더 아픈 건 나한테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한 여름밤 꿈같은 사람이었고 사랑이었다. 가을이 되자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여행지에서 그를 생각하며 사 왔던 선물이 있었다. 만나면 주려고 쇼핑백에 넣어서 현관 앞에 두었었다. 주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출퇴근을 할 때마다 계속 눈에 밟혔다. 마음이 담긴 선물은, 그가 보고 싶다던 나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보지 못하는 그를 향한 그리움도 담고 있었다. 나는 물건을 어떻게든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보고 싶단 마음도, 그립다는 마음도 담긴 선물을 말이다. 내가 미련을 떨고 있단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사는 곳을 찾아갔고, 쇼핑백은 현관에 걸어두었다. 나의 마지막 미련을 그곳에 두고 오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현관에 쇼핑백 걸어두었어. 남의 집에 걸어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 갈게."
그는 나의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아픈 사랑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치열하게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아팠고, 치열했고, 떠나간 한 사람의 빈자리를 짧은 추억으로 채워 넣었다.
또 한 번의 사랑이 끝났다.
@yslee 작가의 시선
이별의 아픈 정도는 사귄 기간과 크게 상관이 없는 거 같습니다. 짧아도 참 아픈 사랑이 있습니다. 마음의 한구석은 피멍이 들고 또 다른 구석은 눈물로 가득 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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